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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자 배우, 안타까운 상황에서 아들 없이 집에서 살아가는 인생사

mehara 2023. 7. 9. 01:16



김영자는 6.25 사태가 한창이던 1950년에 태어났어요. 그녀의 아버지는 군인이셨고 어머니는 부잣집 딸이셨습니다. 그러나 김영자의 부모님은 1930년대에 연애 결혼을 했던 드문 사례로, 보수적이고 엄격한 사회에서 살았습니다. 어머니가 김영자를 임신한 시기에는 마침 6.25 사태가 발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김영자가 1950년 9월에 태어났으므로, 어머니는 거의 만삭이던 시기였죠. 김영자의 가족은 원래 황해도에 살았으나, 전쟁을 피해 모두 대전으로 피난을 갔습니다. 

 

그리고 폭격이 일어나는 와중에도, 김영자를 출산하기 위해 불빛을 가리며 피난지에서 출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출산 후, 김영자의 언니가 아버지 식사를 챙기러 갔는데 "아버지, 아기가 태어났어요"라고 하니 아버지는 또 딸이냐고 물었고, 이번에도 아들을 원했던 아버지는 아들 자짜를 써서 이름을 짓게 되었습니다. 사실 김영자의 가족은 이미 언니들만 셋이 있었기 때문에 아버지는 아들이 나오길 간절히 기도했지만 그 기도가 이루어지지 못했던 것입니다.

 



전쟁 이후 김영자의 아버지는 사업을 시작하기 위해 서울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가족과 연락이 끊겨 김영자의 어머니는 마침내 7살의 딸을 데리고 아버지를 찾기 위해 서울로 갔습니다. 그들은 아버지가 살고 있다는 동네로 가서 한 카페에 들어갔습니다. 여성이 귓속말로 무언가를 속삭이자 김영자의 어머니는 그녀가 카페 주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김영자의 어머니에게 남편이 머물고 있는 주소를 알려주었습니다. 김영자의 어머니는 딸과 함께 주소로 갔습니다. 그리고 문을 열어보니 여성이 새끼 고양이와 함께 누워 있었습니다. 김영자의 아버지는 이 여성과 관계를 가졌고 그 여성의 아이였습니다. 김영자의 어머니는 충격과 분노에 휩싸였고 그 여성에게 고무신으로 때리며 큰 싸움을 했습니다.


저 친구는 별로 친하지 않았는데도 찾아갔다고 해요! 그 친구네 전용 책상에는 화장품부터 먹을 거리까지 풍부해서 크림빵까지 있었다고 하네요. 김형자는 어렸을 때부터 가난한 시절을 보내면서 자신이 빨리 돈을 벌어서 어머니를 도와드리겠다는 다짐을 했어요. 그래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직업을 찾아 탤런트 시험에 응시한 김영자는 1970년 21살 때 TBC 공채 탤런트에 뽑혀서 연기자로 데뷔했어요. 

 



74년 TBC 드라마 막달로 데뷔하며 청순한 외모와 뛰어난 연기력으로 70년대와 80년대를 대표하는 인기 탤런트로 활동했답니다. 김영자는 데뷔한 지 1년도 되지 않아 1974년에 자신이 번 돈으로 어머니에게 새 집을 사들였어요.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효도를 마구마구 해서 고생하신 어머니를 극진히 모시게 됐답니다. 그녀는 안방극장과 영화계를 오가며 수많은 작품에 출연했고, 재미를 이끌어가는 감초 같은 역할을 하면서 활발한 연기 활동을 이어나갔어요!

배우로서 김영자는 명성과 성공을 거머쥐었지만, 사적으로는 항상 행복하지는 않았습니다. 화려한 공적인 이미지와는 달리, 그녀는 두 번의 실패한 결혼과 그 결혼 중 양자간 모두 자식을 잃은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1970년대 초반, 그녀는 한 남자에게 사랑에 빠지고 결혼 약속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가 이들의 관계에 매우 반대하여 그녀는 이별을 했습니다. 첫 사랑을 잊기 위해 그녀는 1978년에 배우 김경수와 서둘러 결혼했습니다. 그들의 결혼은 10년간 이어졌지만, 항상 원활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김영자는 대중들에게 사랑받는 예술계 인물로 남아 있습니다.

 



김영자씨의 첫 남편과의 결혼 생활은 정말 힘든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남편은 여러 여자들과 바람을 피우며, 그 중 일부 여자들과는 아이까지 낳았습니다. 그는 바람을 피우는 것을 막으려는 김영자씨에게 신체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일들에 더해 김영자씨는 임신을 두 번 시도했으나, 하나는 태아가 태중으로 사망하고, 다른 하나는 출생 직후 사망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불륜에 대한 한계점에 도달한 것 같아 1988년 이혼했습니다. 그 다음 해, 그녀는 자신보다 4살 어린 최길규씨와 재혼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두 번째 남편도 강한 사람은 아니었으며 건강 문제도 있었습니다. 김영자씨는 남편의 게으름과 책임감 부족에 실망해, 종종 그를 아이처럼 꾸짖기도 했습니다. 이로 인해 둘 사이에는 많은 말다툼과 긴장감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영자씨는 TV와 영화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기여를 거의 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일에 관심이 없어서, 두 사람 사이에는 계속된 갈등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건강, 경제 상황,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만 걱정하면 된다는 점 때문에 행복하다고 언급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혼자 살면서 걱정할 수도 있겠지만, 건강하고 재정적으로 안정되어 있다면 그들은 그들의 삶에 감사하고 행복합니다. 49살 이후 20년 이상 자신만의 삶을 즐겨온 배우 김영자는 그녀의 친구들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합니다. 두 차례의 결혼과 이혼의 아픔을 겪었지만, 15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한 배우로서 성공적인 삶을 살며 현재의 삶에 만족합니다. 우리는 김영자 배우가 과거의 상처를 극복하고 자기 운명을 만들며 어려운 배우로서 삶을 살아가면서도 용기와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음에 박수를 보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