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에 발매된 명곡 '갈색 추억'으로 무려 14개월 동안 가요톱10 순위권에 등극한 가수 한혜진을 기억하시나요? 그녀는 많은 인기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가수로서의 성공과는 달리 결혼 생활에서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첫 번째 결혼은 실패로 아픔을 겪었지만, 그녀는 두 번째 사랑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행복은 길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저녁밥을 먹고 잠들었지만, 갑작스럽게 남편이 세상을 떠나버렸습니다. 한혜진은 이런 슬픔을 어떻게 이겨냈을까요? 보기와 다르게, 그녀의 삶은 많은 어려움과 시련이 있었습니다. 사실, 한혜진은 K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습니다.
출신 지역에서 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연예계에 발을 들였습니다. 하지만 연기자의 길은 멀고 험합니다. 공채 11기로 데뷔했지만, 전이나 친구로 등장한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사투리 억양이 고쳐지지 않았고, 그게 나의 약점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 친구들의 권유로 강변가요제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전문가를 만나게 되어 가수로의 데뷔를 추천받게 된 한예진은 갈색 추억들 라이브에서 선보이게 됩니다. 가수가 꿈이었던 문희경과 배우를 원했던 저는 서로 꿈을 이룬 것 같아서 기쁩니다.
하지만 연예계 생활에 대해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아버지는 딸이 평범하게 살길 원하셨던 것인데 연기를 하고 가수를 한다고 하니 더 반대했고, 아버지는 하나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혜진이 워낙 노래를 좋아하고 하다 보니 결국 아버지는 딸을 도와주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딸을 위해 땅을 모두 팔았고,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어 직접 앨범 제작을 해야 했던 한혜진을 위해 팔고 논도 팔았습니다. 그러나 딸에게 모든 걸 해주었던 아버지는 췌장암으로 별세하였습니다. 막 성공과도를 달리기 시작한 서울 상경 20년째, 아버지가 배가 아프다고 하더라도 항상 병원을 가보라고 했지만 아버지가 마당하셨습니다. 가족이 모두 아버지를 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췌장암 말기였습니다. 제가 힘들 때 아버지를 아프게 하는 것 같아 속상합니다. 서울에 와서 20년을 살면서 집 하나가 없었습니다. 아버지께 집을 지어서 모시고 싶었는데, 아버지가 그걸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막 성공과도를 달리기 시작했을 때 아버지가 떠나며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하지만 아픈 일을 극복한 한혜진은 갈색 추억으로 대히트를 친 이후에도 서울의 밤, 너는 내 남자 등의 곡으로 트로트 인기 가수로 등극했습니다.
2000년 5월 결혼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녀의 삶에는 새로운 시작이 있었습니다. 프로복싱 전 미들급 분양 챔피언 김보결과의 7년간의 열애 끝에 100년가약을 맺게 된 것입니다. 김보결은 86년에 나경민에게 빼앗긴 챔피언 타이틀을 인도네시아까지 원정과 폴이 파시레론에게서 되찾아온 돌주먹이었습니다.
2010년 두 사람의 이혼 소식이 전해졌지만, 한혜진은 아버지의 췌장암 말기 선고로 힘든 시기를 보내던 중 박강성의 공연을 보러 간 자리에서 두 번째 남편을 만났습니다. 특히 그가 췌장염으로 병원에 입원 중이던 아버지를 위해 각별한 효성을 보여준 것이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한혜진의 남편은 사업가였으며, 한 방송에서는 아내를 위해 약혼 선물로 북한강에 위치한 2층 집을 선물한 모습이 공개되었습니다. 특히 인테리어는 아내의 취향에 맞추어 단정하고 세련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행복도 오래 가지 않았습니다. 2015년 한 매체에서 한혜진의 남편이 부동산 사기를 당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결국 한혜진의 남편은 검찰로부터 부동산 사기로 인한 특정 범죄과 중처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혜진은 어려움을 극복하며 만난 사람이지만, 그녀의 인생은 여전히 다양한 색깔들로 가득합니다. 이제부터도 더욱 행복한 삶을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누군가와 함께 하느냐는 참 중요하잖아요. 지금 너무 행복해요" 라고 말하며 한혜진은 자신의 애틋한 부부애를 대놓고 밝혔습니다.
법적 문제로 징역 8년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 후, 한혜진 측은 2015년 12월 해당 문제가 한 차례 논란이 된 후 언론사의 의도적인 비난을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커지자 한혜진은 미화된 별장을 채권자이자 피해자인 이씨에게 양도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변제 의사가 없어 검찰로부터 중형을 선고받게 되었습니다. 결국 한혜진의 남편은 징역 8년과 징역 3년을 선고받아 구속되었습니다. 그런데 2021년, 한혜진의 남편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혜진은 그날 밤 같이 밥을 먹은 후, 새벽에 남편의 건강 상태가 나빠지자 119에 신고한 뒤 병원에 입원시켰지만, 다음 날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혜진은 너무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었고, 이후에는 그 일이 일어난 것이 믿기지 않아 기가 막혔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엄마와 함께 살며 이겨내고 있습니다. 한혜진은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하며, 남편도 그녀에게 무한한 사랑을 주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남편과 헤어지는 중이라고 이야기하는 한예진을 보면 당시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또한 한혜진은 어렵고 힘든 시간을 극복할 수 있는 데에는 종교에 힘이 컸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부처님을 믿으면서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게 됐어요. 1년 동안 지도로만 살았어요. 여기에 주위 분들의 응원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씀드릴게요. 한혜진은 지금의 모습도 하울의 도시에서 남편이 지켜보고 있을 거라며 미소를 띄우며 말합니다. "여보, 나 잘 살 거야. 언젠가 만날 그날을 기다려, 혼내줄 거야"라며 인사를 남겨 먹먹함을 자아냅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한혜진의 마음에 큰 울림을 준 존재는 바로 가족이었습니다. 한혜진은 엄마와 동생, 조카들에게 멋진 딸이자 누나, 부모로서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합니다. 더 이상 아픔을 주고 싶지 않아요.
방송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씩씩하게 다시 환해진 모습을 보여드릴게요. 그렇게 한혜진이 공개한 집은 방만 7개나 되는 굉장히 넓은 대저택이었습니다. 다른 집들보다 큰 저택에 출연진들이 깜짝 놀라자 한혜진은 "저 혼자 살 집은 아닌데, 가족들이 다 같이 살고 싶어서 엄마와 동생 부부, 조카들하고 살 집을 짓게 됐어요. 그래서 보니 아니게 집을 크게 짓게 됐어요"라고 설명했습니다. 1층과 지하는 한혜진이 사무실 겸 연습실로 쓸 공간이었습니다. 가족이 함께 살 집은 2층부터 시작됐습니다. 2층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채광이 좋은 넓은 거실과 주방이 한눈에 보였습니다. 2층에는 한혜진 어머니가 사용하는 방도 있었습니다.
한혜진이 어때요? 엄마한테 물어보니, 모친께서는 "너무 좋아, 매우 좋아"라고 기쁜 표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현재 딸 한혜진과 같은 침대를 쓰고 있는 한혜진의 어머니는 둘이 함께 자는 것이 불편해서 이제는 다른 방에서 자도록 하고, 새 집으로 이사한 기쁜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집은 멋진 규모를 자랑하는 4년간의 건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집으로, 3층에는 한혜진의 방과 커다란 드레스룸 2개가 있으며, 시원한 산 경치를 볼 수 있는 넓은 옥상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혜진의 엄마는 얼굴도 잘 생기셨으며 가수 박서진의 팬이 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이를 본 한예진은 "내 노래보다 더 좋아한다"라고 질투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러나 한혜진은 디스크 협착증으로 다리가 불편한 어머니를 위해 아침부터 스트레칭을 시켜주는 모습을 보여주며, 이를 통해 얼마나 엄마를 사랑하는지를 알려주셨습니다.
한혜진은 큰 아픔을 겪은 후에도, 엄마와 함께 건강하게 지금처럼 잘 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엄마가 옆에 있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로는 엄마의 나이를 잊어버리기도 하죠. 80대가 된 모친의 모습을 보면, 얼마나 연세가 많은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녀를 더 잘 돌봐드리지 못해서 후회스럽지만, 엄마가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 바랍니다. 한혜진은 가족 중 유일한 존재였지만, 그녀를 지켜준 가족들도 또한 소중히 생각합니다. 가족들과 함께 상처를 극복하며, 앞으로도 건강하게 무대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