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김지애씨가 하와이 호텔 사건에 대해 입을 열었습니다. 과거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김지혜씨는 하와이 호텔 추락 사고에 대해 입을 열었었습니다. 김지애씨는 지난 1997년 발생한 하와이 호텔 추락 사고를 당해 골반과 턱의 부상을 입었습니다. 당시 그녀는 남편과 불화설에 휩싸여 투신자살을 시도했다는 의혹에 휩싸인 바 있습니다. 이와 관련 김지혜씨는 "극단적 선택이 아니었다. 그럴 사람도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녀는 연예계 생활과 가정 생활을 함께 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며 "남편이 집에만 있기를 바랬다"며 결혼 뒤 인생 가치관이 많이 달라진 것 같았다고 털어놨습니다. 한편 가수 김지애씨는 1983년 목포의 블루스로 데뷔하여 이후 KBS 가요톱 10, 골든상, 문체부장관 표창장 등을 수상하며 활발히 활동해 왔습니다.
김지혜는 어렸을 때 KBS 어린이 노래자랑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가수로 데뷔했습니다. 그리고 덕성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동포 위문 공연을 하면서 미8군 무대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1983년에 대한민국으로 귀국한 김지혜는 이미자의 소개로 작곡가 박춘석과 만나 서로의 아이디어를 공유하며 박준석 사단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 해, '목포의 브루스'로 데뷔했던 김지혜는 1986년에 박춘석의 작곡/작사로 이루어진 정통 가요 '사랑비'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김지혜의 인생은 이처럼 다양한 활동을 통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트로트 물레야의 역사를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1989년에는 군대 9전가요를 채용한 전영록의 작사와 사자국 한열의 미운 사람 이을 발표가 인기를 끌었고, 김지혜가 데뷔 때부터 불러온 정통 트로트가 아닌 폭스트롯 계열의 꼭 얄미운 사람은 KBS 음악 프로그램 가요톱10에서 연속으로 5주간 1위를 차지하면서 골든컵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리며 정상권의 진입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하면서 스타덤에 올라 어느 때보다도 더 치열한 경쟁을 벌였죠. 1990년 후반기에는 김동원 시인의 시에 이용이 작곡한 몰래한 사랑 1990, 김동원, 이용희, 경석이 편곡한 곡도 인기를 얻으며 가요톱10에서 연속으로.
5주간 1위를 차지하면서 골든컵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리며 정상권에 진입하게 된 MBC 10대 가수상을 수상하게 되면서 스타덤에 더욱 치열한 경쟁을 벌였습니다. 김동원 시인의 시를 바탕으로 작곡된 '몰래한 사랑'과 '위용', 이경석 편곡도 인기가 있어 가요톱10에서 4주간 1위를 차지했으며, 각종 차트에서도 1위를 기록했습니다.
1992년에는 인용에 따른 농촌 현실의 쇠퇴를 풍자한 '남남북녀'는 KBS 노래말 대상 후보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얄미운 사람', '목포 블루스' 등의 히트곡을 만들어낸 김지혜는 가요계를 이끌 레전드 가수로 점쳐졌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잠정 은퇴한 뒤, 재개를 시도할 때마다 큰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김지혜 씨와 비슷한 상황이었음에도 다른 선택을 한 이미자 씨의 이야기도 함께 전해드리겠습니다.
데뷔 이후,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분은 바로 이미자씨입니다. 김지애씨는 이미자씨를 통해 작곡가 박춘석씨를 만나게 되었고, 1986년 그가 작곡한 롤레아로 이름을 알리게 되었습니다. 더불어, 전영록씨와의 만남을 통해 몰래한 사랑과 얄미운 사람들을 발표하게 되었는데요, 그 결과 두 곡 모두 가요톱10에서 사고주간 1위를 차지하여 김지애씨는 최고의 인기 가수로 자리매김하게 됩니다.
쭉 성공 가도를 달렸다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결혼을 기점으로 내리막길을 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녀의 전 남편 권오규씨가 가수 활동을 반대했기 때문이었죠. 더욱이 권오균씨는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으로 떠나버렸습니다. 그래서 김지애씨는 신혼 때부터 남편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다투는 일이 늘어난 두 사람의 관계는 결국 97년 하와이 추락 사고 후 완전히 단절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음악은 그래도 우리에게 남아 있으니까요.
사고 이후 김지애 씨는 여전히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호텔 객실에서 다투던 중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사고 당시 그녀는 콘크리트 바닥에 머리와 오른쪽 다리가 심각하게 다쳤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더 큰 아픔을 겪게 된 것은 언론 때문이었습니다.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은 기사 때문에 많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언론에는 "남편이 김지애 씨를 밀었다" 또는 "김지애 씨가 스스로 떨어졌다"라는 허위 보도가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직도 그 사고를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추락 사고는 높이가 허리까지 밖에 오지 않는 난간으로 김지혜 씨가 뒷걸음질 치다 발생된 사고일 뿐입니다.
사고 후 김지애 씨는 남편과 이혼하게 되었고 생활이 어려워졌습니다. 결혼 전까지는 방송 활동만 하고 실제 돈을 버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결혼 중에는 남편의 반대로 가수 활동에 제약이 있었죠. 이혼 후에는 심각한 부상 때문에 활동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생활권은 자연스러웠지만, 김지혜 씨는 언제나 위기를 극복하며 다른 사람에게 아쉬움을 끼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큰 원동력은 바로 딸이었습니다. 가수로 활동하던 김지혜 씨는 이혼을 겪었지만, 여전히 딸을 책임지며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에 반해 이미자 씨는 이혼 후 딸과의 관계를 끊고 전 남편과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고 싶어했지만, 아이가 있어서 그게 어려웠다고 합니다. 그녀는 "그때부터 딸과의 관계를 단절했다"고 말했습니다. 즉, 이미자 씨는 전 남편과의 관계를 완전히 지우기 위해 노력했던 것입니다.
이미자씨는 딸과의 관계를 끊었다는 것이 마음이 아프겠죠. 하지만 이미자씨는 딸을 비롯한 결혼의 흔적을 모두 지웠기 때문에 제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김지애씨는 다르네요. 그녀는 세상 그 누구보다 딸을 사랑하는 어머니였어요. 김지혜씨는 딸을 "내가 가장 의지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하며 무대에 오르는 엄마의 의상과 스타일에 관한 조언은 물론 스케줄까지 직접 챙겨준다고 해요.
이미자씨와 김지혜씨는 서로 다른 결말을 맞이했지만, 우리 인생도 선택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생각해봅시다. 김지혜씨는 한동안 노래하는 것과 음악 소리에 거부감을 느꼈지만, 이제는 노래 연습을 열심히 하고 스스로 의상을 준비하며 메이크업도 열심히 합니다.
외모적으로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심지어 54년생인 혜은이 전영록에 비해 62년생인 김지애 씨가 더 나이 들어 보일 정도였죠. 62년생 또래 연예인인 최민수, 최양락, 김청, 박준금, 최수종 씨와도 너무나 차이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녀의 노래 실력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카랑카랑한 특유의 목소리는 여전하지만 호흡이 부족할 뿐더러 끄덕임 처리도 굉장히 어색합니다. 잘 벌어지지 않는 턱 뭉개지는 발음, 앞으로 나가지 않는 소리, 그녀가 과거 추락 사고로 인해 턱을 크게 다친 후유증 때문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2017년 그녀의 컴백 무대를 본 많은 시청자들은 눈물까지 흘렸다고 합니다. 김지혜씨가 예전의 목소리를 되찾아 이번에는 꼭 재기에 성공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김지혜씨가 더 이상 추억의 가수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가수가 될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