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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 배우, 어쩌다 이런 일.. 안타까운 현재 상황 속 가슴 아픈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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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ehara 2023. 6. 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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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옥은 1938년에 태어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요새 나이가 많다고 하는 사람들이 대개 50년대 정도에 태어난 사람들인데, 김영옥은 1930년대에 태어났습니다. 요즘은 일제시대를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도 많은데, 80대 노인이 그런 사람들을 보면 참 기가 차고 우습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죠. 김영옥은 매우 김용하지만, 안타깝게도 30대 젊은 시절부터 할머니 분장의 역할을 주로 맡아 연기했습니다. 

김영옥 본인 말로는 정확히 31살부터 연기를 시작했다고 하는데, 1976년 드라마 "여고 동창생"에서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딸을 둔 엄마 역할을 맡았고, 환갑이 다가오기 전인 1996년 드라마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에서는 치매노인 역할로 출연해서 동년배 버린을 연기했습니다.

배우 주원과 나문희가 그 드라마에서 아들과 며느리 역할을 했습니다. 김형욱은 동년배랑 부부도 아니고 아들과 며느리 사이로 연기에서 참 부은 했다고 하는데요. 이 드라마 이후 1997년에는 드라마 "내가 사는 이유"에서 남은이와 친자매 역할로 나왔는데, 하필 나문희가 정신장애가 있는 역할이라 지난 예인 김영옥을 드라마 후반부까지 엄마라고 부르는 연기만 했고, 친지인 김형욱은 자신보다 한 살 위인 선배 신고의 엄마 역할도 했었습니다.

 김영옥은 당시 신구가 주인공인 작품의 섭외되었다고 하길래 자신이 신고의 부인 역할인 줄 알고 대본을 받았는데, 자신이 엄마 역할이라는 걸 알게 되어 당황스러웠다고 합니다. 그녀는 3월 2일로 언론 연기자들이 하나둘씩 타게 하면서 놓인 배역을 맡을 배우들이 점점 줄어들게 되면서 비중을 가리지 않고 놓인 역할로 여러 드라마에서 다작을 하게 되면서 그 입지가 더 커졌고, 남자 놓여 건 주로 이순재가 얼굴을 비춘 다면 여자 노력은 대부분 김형욱 아니면 나문희가 꿰차고 있을 정도로…

 


브라운관에서 얼굴을 자주 볼 수 있는 친근한 배우 중 한 분이 되셨군요. 김영옥 씨는 그동안 가난한 할머니에서 인자한 할머니, 욕쟁이 할머니, 부잣집 할머니 등 방송사 및 창녀를 가리지 않고 정말 다양한 할머니 역할을 소화해 젊은 나이부터 할머니 연기의 1인자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예능 프로그램에도 왕성하게 출연하셨고, 연극 불효자는 웁니다의 전국 투어도 성황리에 마치셨으며, 성우 출신 답게 각종 프로그램의 나레이션을 맡으셨으며, 어린이들을 위한 전래동화 전집에서 할머니 목소리로 도막 구현까지 하셨습니다. 

그녀는 정말 80대 나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만큼 젊은 사람들보다 더 많은 엄청난 활력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이제는 활동을 쉴 만도 하지만, 그녀에게는 활동을 쉴 수 없는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녀는 슬하에 1남 1녀를 두고 있으며, 그녀의 자녀들도 나이를 많이 먹으셨습니다. 그녀의 손자도 이미 30대인데, 그녀가 아끼던 손자가 얼마 전에 참사를 겪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 사건은 손자가 택시를 타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무면허 음주운전 차량이 인도까지 올라와서 손자를 치게 된 일입니다. 면허가 없는 사람이 술에 취한 상태로 운전하고, 차는 대포차였는데, 그 차가 인도까지 올라와서 택시를 잡고 있던 손자를 뒤에서 받아쳤습니다. 그 사고로 손자는 그 자리에서 의식을 잃고 혼수상태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 교통사고에 충격을 받은 김영옥 씨의 딸, 즉 손자의 엄마도 아들의 참사에 큰 충격을 받아 자구 1년 만에 쓰러지셨으며,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셨습니다. 그녀의 딸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깨어나지 못하는 아들의 손을 주무르고 수건으로 닦고 마사지를 해주면서 지켜봤지만 결국 1년 만에 쓰러지게 되셨습니다. 딸까지 아파서 김영옥 씨는 자신이 미쳐버릴 것 같으셨고, 딸이 손자를 돌보느라 더 아파하실까봐 그녀는 스스로 손자를 돌보고 있습니다.

고 털어놨습니다, 그녀의 손자는 이후 몸을 회복하면서 위 식은 돌아왔지만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하는 정도로 힘겹게 견디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김영옥에 따르면 여전히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어요.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딸을 생각하며 개를 보면 마음이 아파요. "우리 딸이 건강해야 해" 라며, 손자가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그녀는 딸한테 "도 d 가 건강해야 손자도 일어난다. 내가 애 데리고 있는 동안 걱정말고 섭생 잘하고 견뎌라"고 전해요.

 손자를 봐 주기 위해서라도 나 자신이 건강해야 한다는 마음을 먹고 생활하고 있어요. "내가 버텨야 손주를 챙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건강을 더욱 챙기게 되었고, 내가 손주를 돌보는 것도 있지만 손주가 나를 돌보는 것 같다"는 말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게다가 김형욱은 당시 이미 사랑하는 자신의 가족들과 영원히 만날 수 없는 이별을 했던 상태였는데, 김영옥에게는 두 명의 오빠가 있었습니다.

 


어머님이 오빠들을 다락방에 숨겨두셨다고 하네요. 25살당시 인민군으로 끌려간다는 소문이 돌아다녔다고 하니 정말 두렵고 불안했을 텐데, 그런데도 오빠들을 지켜보려고 노력하셨다니 칭찬할 일입니다. 하지만 결국 연세대학교 재학 중이던 큰 오빠는 북한으로 끌려가게 된 거죠. 그리고 큰 오빠는 북한군으로, 작은 오빠는 국군으로 싸우며 서로 다른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것 같아요. 

그렇게 오빠와 이별을 하고 나서는 수십 년간 만나지 못했다고 하네요. 그러다가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50년이 지나서야 큰 오빠와 재회하게 된 김영옥씨는, 재회의 짧은 시간 동안에도 큰 오빠를 보면서 행복과 감동을 느낀 것 같아요. 하지만 그녀의 오빠는 아직도 잘 살아서 지내고 있는지, 현재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태라는 것이 참 안타깝네요. 

또한 손자가 참변을 당하고, 그녀의 딸도 쓰러지면서 건강을 잃으셨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그녀의 인생에서는 이별과 상처가 많았겠지만, 여전히 감정이 따뜻한 그녀의 이야기에 우리 모두 응원을 보내드립니다.